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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무슨 개뿔 1

Herr S.R.
Exsikkose (탈수), Kachexie (악액질: 전신쇠약), Infekt unklarer Fokus (위치불분명 감염)
Broncial CA met. cerebral, ossär, pulm. und Nebennieren (기관지암, 대뇌, 골, 폐, 신장전이)
Palliativ 입원 2022.07.25

음악은 우리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음악은 마치 무형의 손길처럼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 안에 숨겨진 감정을 끄집어낸다.

음악은 또한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을 음악은 한 순간에 전달할 수 있다.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아픔, 사랑, 기쁨, 슬픔, 그 모든 감정들이 음악을 통해 해방된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준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음악은 그렇게 우리를 이어주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준다.

2022년 7월 26일 처음으로 S.R.씨를 만났다. 오전회의때 S.R.씨에 대해 간단한 브리핑을 들었다. S.R.씨의 과거 직업은 법학교수, 아내는 내과 교수였고 아내가 병실에 함께 있기를 원해서 방에 두개의 침대를 두고 함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간호사들의 사전 정보에 따르면 그는 과거 취미로 다양한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했고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S.R.씨가 어제는 거의 대화 불가능 할 정도로 안좋은 상태였다고 전해들었기 때문에 회진 전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S.R.씨의 방에는 침대 두개가 나란히 놓여져있었다.

내가 방에 들어갔을 때 S.R.씨의 아내는 잠시 물을 가지러 방을 비운 상태였고 S.R.씨는 눈을 감고 있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음악치료사 김성은입니다. 오늘 기분이 어떠세요?”
말을걸자 그는 눈을 슬며시 뜨며 대답했다.
“진짜 별로예요 (Beschießen). 뭐하러 왔어요?”

막 대답을 하려던 찰나 그의 아내가 굉장히 경계하는듯 한 표정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누구세요? 왜그러세요?”
나는 이름표를 보여주며 다시 한 번 나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김성은이고 이 병동 음악치료사 입니다. 오전 회진 전에 잠시 소개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잠깐 찾아왔어요.”
그러자 그의 아내는 안도를 한 듯 숨을 내쉬며 말했다.
“잠시만요. 남편이 목마르다고 하니까 일단 물부터 줄게요.”
그녀는 어딘가모르게 굳어있었고 불안해보였다. 남편에게 물을 주는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지 않아보였다. 간호사들이 말하기를 아내가 남편을 바라(쳐다)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S.R.씨가 물을 몇번의 기침을 거쳐 힘겹게 마신 후 숨을 고를 때 나는 다시 아내와 대화를 시도했다.
“오전 회의때 남편분께서 과거에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의사선생님께서 회진 전에 먼저 이 방에 가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셔서 오게되었습니다.”
“어머 그러시구나. 안녕하세요. 우리 남편은 옛날부터 음악을 정말 좋아했어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했고 나랑 결혼하기 전 대학생때는 재즈클럽에서 연주도 하고 그랬어요. 음악듣는거 좋아하고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다 즐겨들어요. 그런데…”
그녀는 불안한듯 손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
“남편과 직접 얘기해보세요. 저사람 너무 변해서 나는 이젠 저사람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없어요..”

“음악은 무슨 개뿔”
그가 아주 작은소리로 말했다. 나는 잘못 들은줄 알고 다시 물었다.
“S.R. 교수님 뭐라고 하셨어요?”
그는 다시 말했다.
“당신이 제대로 알아들은게 맞아. 다 필요없으니 나가세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더 이상 대화를 하고싶지 않다는 확고한 의지였다.
그의 아내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선생님 미안해요. 저사람이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닌데. 아휴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요 나도 이제 저사람에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하는건 다 틀린것 같고…근데 또 다른 사람이 하는건 싫다고 하고..”

잠시 밖으로 나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러했다. 남편이 아파진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최근 한두달 갑자기 남편의 상태가 급격히 안좋아졌단다. 아내분도 나이가 들어 힘에 부쳐서 (그도 그럴것이 그는 키가 185가 넘는 장신에 가볍지 않은 몸을 가졌다.) 사회복지 서비스를 신청하셨는데 누구의 손도 거부하시고 오직 아내만 자기를 만질 수 있다고 하시며 다 쫒아내버렸단다. 하지만 아내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도 거부하기가 일쑤라며 고개를 떨궜다.

“나는 이제 모르겠어요..아무것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못하겠고…미안해요.”
그렇게 말하는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멀리서 볼때 단단해보였던 그녀는 톡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것 같았다.
그동안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는 일을 하며 얼마나 많이 참아냈을까.

“저는 괜찮아요. 10분 후 쯤 회진때 다시 들어올게요. 이따가 복도에서 음악치료가 있는데 혹시 시끄러우시면 어떡하죠? 문을 닫고 계시려면 답답하실텐데.”
“그래도 저사람이 싫어하면 닫아야죠 뭐…원래 음악을 달고 살던 사람인데 왜저러는지..”
“건강할 때 음악을 좋아하셨던 분들 중 간혹 그런 경우가 있어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던 건강한 시절을 떠올리는게 불편하다고 하시더라구요. 혹시 모르니까 문은 살짝만 열어둘게요. 함께 계시니까 싫어하시면 바로 문 닫으세요.”
“알겠어요..”

한숨을 푹 내쉬며 돌아서는 아내의 어깨가 굉장히 무거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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