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란

공감. 한자로는 共感, 영어로는 Empathy, 독어로는 Empathie 혹은 Einfühlung. 두산백과사전은 공감의 뜻으로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 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그 정의는 어디까지나 단어의 윤곽만을 그릴 뿐, 그 깊이를 담아내지 못한다. 공감이란 단순히 ‘이해’의 틀 안에 갇히지 않는다.

치료사에게 꼭 필요한 성격적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이 바로 ‘공감능력’ 이다. 실제로 많은 환자들은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공감’ 이라는 말을 들으면 음악치료 석사 과정 중의 한 수업을 떠올린다. ‘상담의 실제’ 이름의 수업이었다. 그곳에서는 3명이 조를 이루어 치료사, 내담자 그리고 관찰자 역할을 돌아가며 연습하곤 했다. 다른 학생들은 뒤에서 참관했고, 세션이 끝난 후 각자 느낀점에 대하여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내담자 역은 항상 먼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문제로 이곳에 찾아오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서술되어있는 카드를 받고 숙지한 후 상담자 역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날 내가 내담자 역을 맡았을 때였다.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Y라는 이름의 여성 환자로, 수년에 걸친 다양한 신체화 증상으로 내원한 케이스였다. 카드 내용 숙지 후 치료사역의 A와 세션을 시작했다.

“어서오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이름은 A입니다. Y씨 맞으신가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제가 Y 맞습니다.”

카드에 쓰여진대로 나는 내가 왜 이곳에 찾아왔는지 설명했고 A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힘드셨겠어요.” “그랬군요.” “아, 정말 나쁜 사람이네요.” 그의 말은 부드럽고 그의 태도는 친절했다. 그러나 세션이 끝날 무렵, 나는 이상하게도 공감을 받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를 마주한 A가 어딘가 멀게 느껴졌다. 마치 투명한 벽 너머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처럼. 앞에있는 A에게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교수님이 물었다. “충분히 공감받았다고 느꼈나요?”

나는 순간 입이 얼어붙었다. 내 생각을 읽은 것 같은 질문이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우물쭈물 그렇다고 대답하니 교수님은 내게 솔직해질 것을 요구했다. 지금 네가 느낀점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야 우리 모두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것이라고. 나는 A에게 이건 절대로 너를 비난하는게 아니라고 10번쯤 말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사실 공감받았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교수님의 다음 질문은 당연했다. “왜 그렇게 느꼈죠?”

나는 한참 동안 이유를 생각했다. ‘이게 진짜 상황이 아니라서?’ ‘내가 비협조적이어서?’ ‘A가 성의가 없어서?’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리고 마침내 떠오른 한 가지 이유. “질문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랬다. A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그는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맞장구를 쳤으며, 진심으로 공감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공감은 나에게 닿지 않았다. 공감이란 리액션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질문 없는 공감은 공감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형태만 흉내 낸 껍데기에 불과하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일까?”를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상대의 말 위를 가볍게 스쳐 지나갈 뿐이다. 공감은 상대를 향한 깊은 관심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시작된다.

‘어쩌다 어른’ 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정혜신 정신과 의사는 공감의 왜곡된 형태를 ‘공감 코스프레’라고 불렀다. 조금 자극적인 표현이지만, 어쩌면 정확하다. 공감을 잘못 이해하면, 그것은 진심이 빠져버린 단순한 연기가 될 뿐이다. 상대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공감에 닿을 수 없다.

공감의 가장 큰 적은 지레짐작과 속단이다.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내가 이미 안다고 여기는 순간 공감은 그 자리를 떠나고 만다. 공감은 상대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눈과 귀와 마음이 되어 그가 느끼는 세상을 함께 느끼려는 노력이다.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우리가 조금 더 공감하기를 연습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상처받은 사람들이 숨 쉴 공간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완벽한 공감이란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상대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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