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던 원치 않았던, 나는 요양원에서 일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 다른 별칭들을 얻었다. Sonnenschein, Liebeskind, Schätzele, Schatz, Sternchen, Engelchen, meine Musik 등등 (이 별칭들은 번역하기엔 너무 닭살 돋는다). 각자의 의미와 추억이 있는 별칭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별칭은 역시나 ‘meine Musik (나의 음악)’.
요양원에서 일을 시작하고 세 달 정도 지난 후, 가장 놀라웠던 것은 치매 환자들이 내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차린다는 것이었다. 스테이션에 올라서는 나를 마주치는 환자들이 “오! 오늘 노래하는 날인가?” 라고 묻거나 “우리랑 노래 부르러 온거지?” 라고 물으시길래 악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했더니, 나중에는 그냥 몸만 가도 “악기는 어디다 두고 몸만 왔어요?”라고 물으셨다.
간호사들과 사회복지사들과 다르게 나는 사복을 입었기 때문에 직원인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유일한 동양인인 나의 외모 때문일까, 아니면 음악치료와 관계된 어떤 결과일까 하는 궁금증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던 어느날 한 간호사가 내게 와서 말했다.
“너 그거 알아? U. 할머니는 네가 없을 때 널 그렇게 찾아!”
나를 찾는다고? 도대체 나를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지 나는 이해할 수 가 없었다. U. 할머니는 치매가 매우 진행이 되어 일상의 대화조차 어려운 분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찾으시냐는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몰랐구나, U. 할머니는 너를 ‘meine Musik’ 이라고 부르셔! 네가 없는 날이면 나의 음악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냐고 그렇게 하루종일 널 찾는다구! “
나의 음악.
그 순간, 내 안에 있던 모든 의문들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내가 음악치료사로서 하는 일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을 잠시나마 되찾아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U. 할머니는 여전히 나를 ‘meine Musik’ 이라고 부르셨다. 할머니는 음악치료를 할 때, 내 손을 잡고 미소를 띄우며 정말 행복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는 했다. 그 순간만큼은 어둠이 걷히고 밝은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래. 무어라 불리면 어떠하리. 환자들이 그 순간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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