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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2

T씨가 떠나고 나서, 그녀와의 만남은 한동안 나의 마음 속 깊이 남아있었다. 쉬는시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쉬는시간이라 느껴지는 것은 어떤 것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거나 고통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그 소음과 혼란 속에서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고요한 순간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런 순간을 함께 만들어줄 누군가의 존재일 것이라는 것을.

이런 사람들은 몰아치는 우리 인생에 쉼표를 남긴다. 그들의 등장 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조금 더 단순해지기도 한다. 복잡했던 마음은 그들과 함께 있으면 차분히 가라앉고, 어지럽게 얽혔던 생각들은 한 올씩 풀린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문제에 압도되지 않도록 우리를 지탱해 준다. 마치 고요한 호숫가처럼, 그들의 곁에서는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된다.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에는 달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숨 가쁘게 뛰던 마음이 조용히 쉬어간다. 그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묵묵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그들 앞에서는 굳이 나 자신을 포장하거나 변명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음을 그들은 우리에게 일깨운다. 그들과의 대화는 삶의 본질을 건드린다.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아름다움, 사소한 기쁨, 그리고 따뜻함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결국, 그런 사람이 우리 삶에 남기는 것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선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평온함은 문제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힘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완화병동의 날들은 결코 쉽지 않다. 삶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과의 시간은 내가 삶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환자들의 고통은 내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가족들의 복잡한 감정은 나를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내가 이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고요한 순간들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말들, 그들이 삶의 무게를 내려놓으며 만들어내는 평온의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 속에서 나 또한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경험들.

나는 그런 순간들을 계속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고요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쉼표가 되어 주고 싶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따뜻함으로 마음속에서 여전히 남아있고 싶다.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생각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

“어떻게 그곳에서 일하세요?”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곳은 삶이 가장 진솔하게 드러나는 곳입니다. 그 안에서 저는 인간의 가장 깊은 모습, 무엇보다도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이곳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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