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u T.
NSCLC li OL ED, Met lymphogen, pulmonal, ossär, zerebral (비소세포 폐암, 좌측 폐 상엽, 림프절, 폐, 골, 뇌 전이), COPD (만성 폐쇄성 폐질환), Kachexie (악액질: 전신 쇠약), LAE (폐동맥 색전증)
Palliativ 입원 2023.06.26
“너무 힘드시겠어요.”, “어떻게 그곳에서 일하세요?”, “그곳은 사람이 많이 죽는 곳 아닌가요?”
내가 완화병동에서 일한다고 하면,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그 말에는 진심 어린 걱정도,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막연한 두려움도 담겨 있다. 맞다. 완화병동에서의 일은 쉽지 않다.
완화병동에서 일을 하다가 보면 삶의 소음이 너무 커져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하루하루 닥쳐오는 문제들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마음속엔 해결되지 않은 생각들이 얽히고 설켜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걱정과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그 부담감은 때때로 나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병동에서 매일 마주해야 하는 건 환자들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통증과 싸우는 그들의 몸뿐 아니라, 병원이라는 공간에 발을 들이면서 빠르게 덮쳐오는 심리적, 사회적 문제들까지 함께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마음들, 가족들 간의 복잡한 감정, 병동 전체에 감도는 긴장과 무력함의 공기. 모두가 끝없이 바쁘고, 정신없고, 때로는 깊이 우울했다.
그러나 그런 혼란 속에서도, 마치 따뜻한 바람처럼 조용히 내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예상하지 못한 틈으로 찾아온 작은 기적 같은 것들이었다. 한 환자가 고통 속에서도 짓는 힘겨운 미소,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잡은 두 손의 온기, 나눈 이야기들, 그리고 방 안을 채우던 음악이 만들어낸 찰나의 평화 같은 것들.
그런 순간들은 나를 고요히 어루만지며, 내가 잊고 있던 숨 쉴 공간을 되찾게 했다. 그 순간들은 나를 채우려 하지 않았다. 꽉 쥔 주먹을 스르르 풀게 만들고, 긴 숨을 내쉴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그날 아침, 환자 리스트를 확인하던 나의 눈이 한 이름에서 멈췄다. T씨였다. 그녀는 이미 세 번이나 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는 환자였다. 아는 사람의 이름을 리스트에서 볼 때마다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다시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안도와 함께, 병세가 악화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오전 회의에서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한층 더 복잡한 마음으로 그녀의 병실 문을 노크했다.
“네 들어오세요.” 하는 아주 작고 조용한 목소리가 가슴에 콕 박혔다. 문을 열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지난 세 번의 입원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전의 T씨는 늘 바쁘게 서류와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병원에서도 업무를 멈추지 못하던 사람. 본인은 가족이 없기 때문에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 채 자신이 해야만 한다며 멋쩍게 웃던 사람이었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음악치료에는 참여할 수 없지만 나와 하는 대화 시간은 즐겁다고 말하던 환자.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다른 환자들에게는 익숙했던 그 모습이 그녀에게서는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밝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T씨 안녕하세요, 간밤에 잘 주무셨나요? 오늘은 어느 서류도 없네요, 이게 무슨 일이죠?”
그녀는 나를 보고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네 김 선생님, 잘 잤어요. 이제는 서류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선생님은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가 조우한 것 처럼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전과 달리 대화 내내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의 말과 표정은 눈에 띄게 평온해 보였다.
“예전에는요,” 그녀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내가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 아니면 안 될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 손에서 내려놓으니, 그 모든 게 제 손에 없어도 괜찮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실 그냥 불안했던 것 같아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쓸모없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나는 그녀의 말에 잠시 숨을 멈췄다. 내려놓는다는 것. 그것이 아마도 그녀가 오랜 시간 붙잡고 있었던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마침내 자신을 자유롭게 한 것이리라.
“T씨, 지금의 모습이 정말 멋지세요. 힘들었을 텐데, 스스로 자유로워질 방법을 찾으셨네요.”
그녀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지금은 고통이 크지만, 이 병동에서,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할 때 나는 가장 나다울 수 있어요. 여기선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을 포장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그게 참 편안해요. 마치 쉬는시간 같달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말하는 “가장 나다울 수 있다”는 그 말은 이곳, 완화병동이 지닌 모든 무게와 아이러니를 담고 있었다.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을 진솔하게 마주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T씨, 그게 어떤 느낌인가요? 가장 나다울 수 있다는 게요.”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그건… 내가 더는 뭔가를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선생님과 함께 할 땐 그저 내가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느껴져요.”
그녀의 말은 마치 내게도 던지는 메시지 같았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은 것을 이루어야 하고, 더 나아져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깨달음은 달랐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금의 자신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은 삶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평온이었을 것이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대화가 점점 어려워졌고, 음악치료는 주로 수용적 음악치료로 이루어졌다. 그녀는 더 이상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려웠지만, 음악이 흐르는 동안 그녀의 얼굴에는 희미한 평온함이 감돌았다. 음악이 끝날 무렵, 그녀는 가끔 힘겹게 눈을 뜨고 나지막이 말했다.
“하늘이 맑을까요?”
그럴 때마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고 대답하곤 했다.
“네, 오늘 하늘은 정말 맑아요. 구름 한 점 없고, 햇빛이 아주 따뜻해요.”, “오늘의 하늘은 흐려요, 곧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모습이에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마치 마음 속으로 하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처럼 보였다.
며칠 후, 그녀는 깊은 잠에 빠지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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