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할아버지는 요양원 1층 왼쪽 스테이션의 맨 끝 방에 살고 계셨다. 매우 마른 몸으로, 보행기에 의지해 천천히 걸을 때마다 간간히 흔들리는 몸이 불안하게 느껴져서 늘 옆에서 언제든지 부축할 준비를 해야했다. 할아버지는 안암 수술을 받고 난 후 안면 마비가 와서 자주 한쪽으로 침이 흘렀고, 그 이후부터는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룹활동을 중 다른 환자분이 할아버지에게 ‘침을 흘려 더럽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 큰 상처로 남은 것 같았다. 그 날 이후 할아버지는 더 이상 그룹 치료에도 참여하지 않고, 밖에서 다른 환자들과 식사를 하지도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아주 가끔, 병원을 가실 때나 사회복지사와 단둘이 산책을 할 때만 방 밖으로 나오셨다. 사회복지사들은 할아버지를 산책에 데려가기 위해 꽤 오랜 시간 설득해야 한다고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마치 밖에 나왔다가 크게 다친 달팽이처럼, 20 평방미터 남짓한 방 안에 자신을 꽁꽁 싸매고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다.
그 작은 방은 할아버지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자명종 시계 소리와 함께 조용히 흐르는 시간만이 할아버지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그 방에서 할아버지는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지내셨다.
처음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미안하지만 얼굴을 만져봐도 되겠냐고 물으셨고, 나는 그러시라고 허락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10cm 거리까지 가까이 다가오셨다. 당황해 굳어버린 나를 느끼셨는지, 할아버지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아주 가까이서 보아야 형체를 겨우 구분할 수 있고, 만져야 대략 알 수 있어서 그렇다며 몇 번이나 사과하셨다.
요양원에서 음악치료사는 다양한 변수에 맞춰 융통성 있게 상황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면서 동시에 환자의 일상을 위한 시간엄수와 하루의 패턴을 잘 기억할 줄 알아야 했다. K 할아버지의 경우도 그랬다.
할아버지의 방에는 오래된 큰 자명종 시계가 있었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는 K 할아버지의 개인 음악 치료 시간이었다.
2시 55분쯤 치료를 위해 방 앞으로 걸어가면, 할아버지는 늘 문 앞에 서서 나를 맞이하셨다. 시계가 울리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매번 알고 나와 계시는지, 편히 앉아 계시지 왜 서 있으시냐고 물으면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너를 조금이라도 빨리 맞이하고 싶거든. 두 시의 괘종이 울리면 그때부터 이 시간을 기다려.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멀리서 네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와. 너의 걷는 소리는 다른 사람과 달라서 금방 알 수 있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나에게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했다.
“만약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아, 누군가가 나를 이토록 기다린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감사 뒤로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말이었다.
할아버지는 시력이 좋지 않은 대신 다른 감각이 매우 발달하셨었다. 나의 걸음 속도, 인사하는 목소리, 그리고 자리에 앉기까지의 모든 순간을 꿰뚫어보고 계신 듯했다. 오늘 내가 어떤 기분인지, 어떤 표정을 짓고 인사를 하는지, 머리가 복잡한지 아니면 그날 하루가 많이 바쁘고 힘들었는지 할아버지는 늘 알기를 바라셨고, 할아버지는 그것을 일종의 놀이처럼 즐기고는 하셨다.
지난 3년의 시간동안 소수의 사람과 매우 짧은 소통만 하셨던 할아버지는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너무나도 좋아하셨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고 안면에 마비가 있어도 문제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것에 기뻐하셨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방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나는 다양한 악기를 준비했고, 할아버지는 그 악기들을 만져보고, 연주해보시며 87세의 나이에도 새로운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며 때로는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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