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러웠다. 이런 부탁은 난생 처음이었다. 마지막을 함께해달라니. 나의 흔들리는 눈빛과 망설임을 느낀 듯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쉽지 않은 부탁이겠지? 하지만 킴. 내 생각엔 내가 내 남편에게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것 같아. 요즘에는 점점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이 없어져. 이렇게 계속 시간이 지나다 보면 아마 나는 곧 하늘나라에 갈거야.”
나는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26살의 나는 그때까지 죽음을 접해본 적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이런 내용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이 아니었다. 배운적도, 생각해본적도 없던 부탁.
이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띄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얼굴에서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킴. 나는 너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정말 평안해져. 내가 하나님의 곁으로, 남편의 곁으로 돌아갈 때, 너의 목소리를 들으면 두려움이 없이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을 것 만 같아.”
그 순간 “아..”하는 탄성이 입밖으로 나와버리고 말았다. 이런 말을 듣고 어느 누가 거절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별히 원하시는 노래가 있으세요?”
그러자 그녀는 기쁜듯이 환한 미소를 띄며 “Großer Gott, wir loben dich”를 듣고싶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몇 주 후부터, B 할머니는 눈에 띄게 점점 쇠약해져갔다. 밝은 웃음과 장난기 어린 농담은 점점 사라졌고 주무시는 시간이 점차 길어져만 갔다. 간호사들은 그녀가 더 이상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그에 맞추어 음악치료도 자연스럽게 수용적 치료법으로 바뀌어갔다.
2017년 7월 10일, 이전 주 금요일 퇴근시 이미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걱정하는 마음으로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할머니 방을 찾았다. 방 안에는 여름의 햇살이 비춰지고 있었고 할머니는 얕은 숨을 간간히 내쉬고 계셨다. 간호사들은 내게 말했다.
“너무 오래 걸리신다… 뭘 기다리고 계시는걸까?”
나는 할머니와 한 약속을 간호사들에게 이야기한 후, 기타를 챙겨 방으로 돌아왔다. 간호사 두 명과 사회복지사 한 명, 그리고 나. 네 사람이 B 할머니의 침대에 둘러섰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숨이 점점 더 얕아지고 숨 사이의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우리는 간간히 할머니의 숨을 체크하며 계속해서 “Großer Gott, wir loben dich”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녀의 환한 웃음, 그녀가 들려주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 그녀의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 모든 순간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노래를 세번쯤 불렀을 때, 마침내 할머니는 아주 조용히, 평온하게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방 안에는 깊은 평화와 안식이 감돌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얕은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약속을 지켜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그 순간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치료사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직업적 거리를 지키지 않았던 나의 첫 환자. 그래서 더욱 더 기억에 남은 B 할머니.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남겨진 자로서의 책임을 다짐한다. 이 경험을 통해 죽음이라는 주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음악치료는 이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을 가져다주는 귀한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첫 환자, 그리고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 그것은 나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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