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의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이에게는 무섭고, 또 다른 이에게는 깊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이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문턱 앞에서, 우리는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그 순간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숭고하기도 하다.
B 할머니는 나의 첫 개인치료 환자이자, 처음으로 마지막을 함께한 환자였다. 그녀는 90세가 넘은 나이와 중증노쇠증상에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맑았다. 처음 일을 시작하던 날, 할머니는 나를 만나자마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물으셨고, 가능하다면 매일 음악치료를 받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다른 99명의 환자들을 위한 시간도 필요했기에,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 개인치료를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B 할머니는 상당히 유쾌한 분이었다. 내가 방에 들어서면, 그녀는 침대에 기대어 앉은 채로 환하게 웃으며 “Guten Tag, mein Sonnenschein! (안녕, 나의 햇살!)”이라고 맞이했다. 인사를 마치고 난 후에는 늘 거울을 들여다보며 은빛의 짧은 곱슬머리를 빗질했다. “오늘 내 모습이 어때?”라고 물으실 때마다 나는 “오늘도 매우 아름다우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눈을 반짝이며 “내가 네 나이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어. 너는 보면 아주 깜짝 놀랄 거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고는 도도한 아가씨의 표정을 지어보이며 키득거리며 웃으셨다.
음악치료는 매주 두 번씩 이어졌고, 할머니는 점점 더 나와의 시간을 고대하시는 듯 보였다. “킴. 나는 요즘 매일 아침 간호사에게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고 물어. 그리고 화요일이나 목요일이라는 대답을 들으면 기분이 아주 좋아지지. 나의 햇살과 음악치료를 하는 날이니까!”
그녀는 음악치료 중간중간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내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작게 흥얼거리기도 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맑고 아름다웠고,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 생기 넘쳤다. 외국인인 내가 퇴근 후에는 어떤 음식을 먹는지 궁금해하시며 본인이 젊을 때 퇴근 후 재빨리 해 먹을 수 있었던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하셨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침대 옆 서랍을 열어보라고 했고, 그 안에 들어있는 반지를 꺼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서랍을 열어 반짝이는 반지를 찾아 할머니께 건넸다. 할머니는 그 반지를 손에 끼워보았는데, 반지가 너무 커서 곧 빠져버릴 듯 헐렁거렸다. 손에 낀 반지를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추억에 젖은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너무 커져버렸네…킴, 이게 뭔지 아니? 이건 내 남편이 전쟁에 나가기 전 나에게 선물한 반지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반지에 담긴 할머니의 추억을 상상했다. 그녀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는 정말 힘든 시기였어. 남편은 나를 꼭 안아주며 이 반지를 건넸지. 그는 이 반지가 우리 사랑의 증표라며, 언제나 나를 지켜줄 거라고 했어. 그가 떠난 후 이 반지를 한번도 손에 끼워본적이 없어. 그가 돌아오면 끼우려고 늘 아껴뒀지…”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 없이 위로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반지는 마치 새것인것처럼 그녀의 손에서 반짝였다. 그녀는 반지를 바라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말을 멈춘 그녀가 반지를 쓰다듬다가 빼어내며 말을 이어갔다.
“킴. 내가 부탁이 하나 있어…물론 네가 그 날 일을 하는 날이라면 말이야…”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이어갔다.
“나의 마지막을 함께해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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