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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무슨 개뿔 2

회진에 들어가기 전 살짝 상황에 대해 설명한 후 과장님과 간호사와 함께 다시 병실에 들어갔다. S.R.씨는 여전히 눈을 감은채 움직임이 없었고, 아내는 멋쩍은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 눈좀 떠봐요. 선생님 오셨어.”

그는 살짝 눈을 뜨고 우리를 쭉 훑어보더니, 얕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는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이 깊게 가라앉는 듯 보였다. 과장님의 부르는 소리에도 눈을 감은 채, 간간히 통증의 정도에만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회진을 마친 후, 나는 음악치료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 몇몇 환자들은 보행 보조기를 이용해 나왔고, 다른 환자들은 방 문을 활짝 열어달라 부탁하기도 했다. 나는 약속한대로 S.R.씨의 방 문을 아주 조금만 열고, 그의 아내에게 언제든 문을 닫아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살짝 열린 문틈으로 고맙다는 말을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전했다.

몇 분 후, ‘Über sieben Brücken musst du gehen’이라는 노래를 다른 환자들과 함께 부르던 중, 갑자기 S.R.씨의 아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의 표정은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었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긍정의 신호였다.

그 후 30분 동안 음악치료가 이어지는 동안, 열린 방문을 통해 남성의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날 병동에 있던 환자들은 모두 여자였으니, 그 목소리가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불과 몇 분 전 음악을 거부했던 그가 이렇게 마음을 열리다니. 활짝 열린 방문은 그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과장님과 간호사들은 그의 모습을 눈에 띄지 않게 관찰했다. 잠시 후 그의 방의 호출벨이 울렸다. 약간의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그를 보며, 간호사가 말했다.
“S.R.씨,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봐요! 호출벨을 누르셨다니! 이거 실수예요? 정말 뭐가 필요하신 거예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실수가 아니에요. 음악치료사 선생님께 끝나면 나를 다시 방문해달라고 전해주세요.”

음악치료를 마치고, 다른 환자들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후 다시 그의 방에 방문했을 때, 그는 한시간 쯤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인기척에 눈을 뜬 그가 나를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띄며 말을 꺼냈다. 그의 아내는 살짝 자리를 비켜주었다.

“선생님, 아까는 내가…미안했어요. 사실 난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아프고 나서부터는…노래를 일부러 듣지 않았어요. 노래를 들을때마다 내가 건강했을 때 연주하며 즐겼던 시간들이 생각나고, 그러면 자꾸만 지금의 내 상황이 원망스럽고…또 그 때가 그리워지니까…”

“그러셨군요…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해요. 충분히 그러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 밖에서 하는 음악치료가 불편하지는 않으셨나요?”

“전혀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나는 내가 다시 음악을 듣는게 무서웠던 것 같아요. 너무 우울해질까봐. 그런데 아까 무슨 노래였더라..아, ‘Über sieben Brücken musst du gehen’ 그 노래는 나의 애창곡이었어요. 그 노래를 듣는데 마음이…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아내와 손을 잡고 과거를 떠올렸어요…우리는 모닥불 앞에서 그 노래를 함께 자주 부르곤 했었죠…오히려 마주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요.”

그 후로도 그는 꽤 긴 시간동안 그의 두려움, 그리고 슬픔에 대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질병이 갈라놓은 관계들과, 불확실한 미래, 종종 덮쳐오는 죽음에 관한 공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혼자 두게 될 것에 대한 미안함.

말라가는 입을 축이며 한참을 이야기하던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할 것 같네요. 내가 아프고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렇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들어줘서 고마워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하는 그의 모습이 아침보다 훨씬 편안해보여서, 안심이 되었다. 어느새 돌아와 그의 손을 잡고 옆에 앉아있던 그의 아내의 모습도 한결 편안한 모습이었다.

S.R.씨가 ‘Über sieben Brücken musst du gehen’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은 단순한 멜로디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인생을 반추하게 하는 다리였다. 그는 그 노래를 통해 아내와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그 기억들은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강한 통증과 깊은 우울로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그는 음악을 통해 잠시나마 행복과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완화병동 환자들은 종종 내게 음악치료 후 무거운 마음이 덜어졌다는 피드백을 준다. 치료사의 어떤 수려한 말이나 테크닉이 아니더라도 음악은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슬픔을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친구처럼 그들의 곁에 머물러 있다.

그가 나지막이 말했듯이,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에 꾹꾹 쌓아두었던 이야기들, 그의 두려움, 슬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가야 하는 미안함까지, 모든 감정들이 짧게나마 해방되었다. 그의 눈을 감고 평화롭게 잠든 모습이, 그의 마음이 얼마나 편안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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