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기 전 주말. 요양원이라면 대부분 연세가 있는 분들일 텐데, 외국인인 내가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언어적인 어려움은 없을까? 이분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충분히 좋은 음악치료사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밤낮으로 머릿속을 맴돌았다.
첫 출근 날, 마음가짐을 다잡으며 요양원에 도착했지만, 의외로 부딪힌 첫 난관은 – 지난 밤 내 고민이 무색하게도 – 이름이었다.
내 이름은 김성은. 한국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 중 하나이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독일어 발음으로 ‘김성은’을 발음하는 것은 직원이나 환자 모두에게 도전 과제였다. 이미 독일에 산 지 3년이 되어 독일 사람들에게 내 이름이 매우 어렵고 여러 번 반복해야 겨우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 이름을 이야기할 때는 늘 힘주어 이야기하곤 했다.
별칭이나 약칭을 만들어 부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글쎄. 그 때의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함께 공부하고, 일하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가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내 이름 하나쯤은 기억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발음이 쉬운 Frau Kim은 이곳 요양원에는 썩 어울리지 않았다. 존댓말과 반말이 존경과 예의를 나타내기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언어적 특성 때문에 친근함을 표현하기 위해 반말을 사용하자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연세가 평균적으로 88세 이상이었기 때문에, 손녀 같은 내게 존댓말보다는 반말을 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일을 시작한 첫 날, 사회복지사 한 분이 나에게 환자들을 소개해주었다.
“김 선생님, 이분은 성함이 B*** 이시고요, 노래하는 것을 참 좋아하셔서 아마 음악치료를 받고 싶어하실 거예요.”
“B***님,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게 된 음악치료사 김.성.은입니다!”
“만나서 반가워! 이름이 뭐라고? Kim?”
“아뇨, 김은 제 성이고요, 이름은 성은이에요!”
할머니는 잠시 갸우뚱하시더니 잘 알아듣지 못하신 듯 그냥 나를 킴이라 부르기 시작하셨다.
“Kim, 나는 교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 부르면 마음이 편해지거든. 킴은 교회 다녀?”
“Kim, 독일에 온 지는 몇 년이나 되었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독일에는 Kim이라는 이름이 있고, 꽤 흔한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당연히 본인에게 익숙한 Kim이 이름일 것이라 생각하신 것이다. 결국 B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나를 ‘킴’이라고 부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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